9급 지방직 공무원 한국사(2009. 5. 23.) 시험일자 : 2009년 5월 23일

1.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편년체로 쓰여진 역사서이다.
  • ② 민간의 전승과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 ③ 유교적 입장에서 신라를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 ④ 원의 간섭을 받던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강조하였다.

2023. 4. 24. 22:15삭제
1.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전체'로 쓰여진 역사서 *기전체: 역사를 본기, 세가, 지, 열전, 연표 등으로 나누어 편찬하는 형식 편년체: 연월일의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서술(조선왕조실록, 고려사절요) 2. 민간의 전승과 불교와 관련된 내용->삼국유사(일연) 3. 삼국사기-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 신라 계승 의식 4. 원 간선기 삼국유사-충렬왕 때 일연이 편찬,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난 전래 기록을 수록하여 고유 문화와 전통 중시
2. 신라장적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서원경 부근 4개 자연촌의 촌락문서이다.
  • ② 토지면적과 인구, 호, 우마, 뽕나무, 잣나무 등의 수가 기록되어 있다.
  • ③ 농민들에게 조세, 요역 등을 부과하기 위한 자료로 작성되었다.
  • ④ 호는 남녀별, 연령별로 구분하여 9등급으로 기록되었다.

2023. 4. 24. 22:46삭제
신라 장적(민정 문서, 신라 촌락 문서) 1. 서원경 부근 4개 자연촌의 촌락문서 2. 토지는 논, 밭, 촌주위답, 내시령답 등 토지의 면적을 기록하고, 인구, 가호, 노비의 수와 3년 동안의 사망, 이동 등 변동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 밖에 소와 말의 수, 뽕나무, 잣나무, 호도나무의 수까지 기록하였다. 3. 신라장적은 국가의 부역과 조세 기준 마련을 위한 것 4. 사람은 남녀별로 구분하고 16세에서 60세의 남자 연령을 기준으로 나이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호(가구)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상상호에서 하하호까지 9등급으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3. 조선 초기 상업과 관련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시전상인은 왕실이나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에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판매권을 부여받았다.
  • ② 보부상은 일용잡화나 농산물, 수산물, 약재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판매하였다.
  • ③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 등을 만들어 유통하였다.
  • ④ 경시서(평시서)에서 시전상인들의 불법적 상행위를 단속하였다.

2023. 4. 24. 23:19삭제
3.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활구(은병)-고려 숙종, 강제적 유통 시도 1. 시전의 의무와 권리: 왕실이나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 부여 2. 보부상의 활동: 농산물, 수공업 제품, 수산물, 약재 등 유통 4. 경시서의 설치: 시전의 불법적인 상행위 감독
4. 다음 밑줄 친 계층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 법적으로 모든 관직에 나아갈 길이 금지되어 있었다.
  • ②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 되었다.
  • ③ 풍헌이라고 불렸으며 조세ㆍ공물의 징수를 담당했다.
  • ④ 18ㆍ9세기에 수차례 집단 상소를 하여 허통이 이루어졌다.

2023. 4. 26. 16:44삭제
서얼 1. 서얼인 중인은 문과 응시는 불가, 무반직 등용 가능 2. 재한으로 취급되어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노비 3. 풍헌은 감찰관인 대간을 이르는 말 4. 서얼 -임진왜란 이후 사회적 차별 완화, 납속책, 공명첩으로 관직 진출 -영.정조 때 적극적인 신분 상승 운동 전개(동반이나 홍문과 같은 청요직으로 진출 허용 요구)->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됨(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중인: 기술직에 종사하며 축적된 재산과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 추구->철종 때 대규모의 소청 운동 전개(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전문직으로의 존재 부각)
5. 다음 글이 제시하는 시대의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 수리시설의 확충으로 수전농업이 발전하였다.
  • ② 관리들을 18등급으로 나누어 전지와 시지를 차등있게 주었다.
  • ③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여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게 되었다.
  • ④ 관리들에게 녹읍을 지급하고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2023. 4. 26. 16:55삭제
백정 농민->고려 시대 1. 수리시설의 확충으로 수전농업이 발전-조선 후기 2. 관리들을 18등급으로 나누어 전지와 시지를 차등있게 -전시과(고려) 3. 상품화폐경제 발달-토지를 잃은 농민들의 이농-조선 후기 4. 관리들에게 녹읍 지급(신라, 신문왕 때689 폐지되었다가 통일신라에서 경덕왕(757) 때 부활), 백성들에게 정전 지급(성덕왕, 722)
6. 다음의 관서와 관련된 서술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언론과 간쟁을 하는 관서들이었다.
  • ② 중서문하성 낭사와 어사대는 성대(省臺)라고 칭하였다.
  • ③ 홍문관, 어사대, 사간원은 삼사라고 하였다.
  • ④ 왕과 고위관료의 활동을 견제하여 정치의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2023. 4. 26. 17:15삭제
대간(어사대의 관원+중서문하성의 낭사(3급 이하)) 역할: 간쟁, 봉박, 서경권 왕이나 고위 관리들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제약->정치 운영에 견제와 균형 성대, 대성, 대간(대관+간관) 등으로 불림.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조선의 언론 삼사
7. 다음과 같은 정치상황 하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옳은 것은?
  • ①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었다.
  • ② 남인, 소론, 지방선비들이 권력에서 배제되어 사회통합에 실패하였다.
  • ③ 공론이 중시되면서 이조 전랑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 ④ 예송 논쟁이 일어나 붕당 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2023. 4. 26. 18:42삭제
19세기 세도정치 시기 권력 구조 1. 정2품 이상의 고위직만이 정치적 기능 발휘, 그 이하의 관리들은 행정 실무만 담당 2. 실질적인 힘은 비변사로 집중->중요한 자리는 유력한 가문 출신 인물들이 차지, 사적인 이익 추구에 이용->의정부와 6조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는 유명무실 1. 세도정치 시기 왕권 약화 2. 세도 정치의 폐단 사회 통합에 실패: 재야 세력(남인, 소론, 지방선비들)이 권력에서 배제 3. 모든 권력은 비변사로 집중, 이조전랑의 권한은 붕당 정치 시기 강하였으나, 영조 시기 이조 전랑의 후임자 천거와 3사 선발 관행의 폐지로 약화됨. 4. 예송 논쟁은 현종(17세기) 때
8. 신라 말 호족의 출신 성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중앙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지방에서 세력을 쌓은 귀족
  • ② 해상활동으로 재력과 무력을 쌓은 군진세력
  • ③ 지방의 토착세력으로 성장한 촌주
  • ④ 당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개혁을 추구한 지식인

2023. 4. 26. 13:31삭제
호족의 출신 성분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지방에서 세력을 키운 몰락한 중앙 귀족(김주원(강릉), 왕순식(강릉)) -무역에 종사하면서 재력과 무력을 축적한 상인 세력 혹은 군진 세력 해상 세력(장보고(완도), 왕건(개경), 왕봉규(진규)) 군진 세력(장보고(완도), 박수경(패강진) -지방의 토착 세력인 촌주 출신(이총언(성주), 황보능장(영천), 소율희(김해)) 4. 당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개혁을 추구한 지식인=>6두품
9. 영⋅정조 대의 정치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붕당의 폐해를 타파하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 ② 삼사 언론기능이 약화되고 이조 전랑의 권한도 약화되었다.
  • ③ 붕당 정치의 기반이 무너졌으나 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는 공고해졌다.
  • ④ 왕권이 강화되면서 왕은 정국운영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2023. 4. 26. 13:53삭제
1. 탕평 정치의 실시 2. 영조 이조 전랑의 권한 역화: 이조 전랑의 후임자 천거와 3사 선발 관행의 폐지 4. 왕권 강화: 정국의 운영이나 이념적 지도력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가장 큰 영향력 행사->붕당의 정치적 의미 약화 3. 정조 때 수령의 권한 강화: 군현 단위의 향약을 직접 주관, 지방 사족의 향촌 지배력 억제, 백성에 대한 국가의 통치력 강화
10. 고려 중기에 시행된 관학진흥책과 거리가 먼 것은?
  • ① 5경, 3사, 제자백가에 모두 능통한 자는 3등급으로 나누어 등용하였다.
  • ② 양현고를 두어 국학의 재정기반을 강화하였다.
  • ③ 국학에 7재를 두어 교육을 전문화하였다.
  • ④ 경사 6학의 제도를 정비하여 관학 교육을 강화하였다.

x2023. 4. 29. 10:26삭제
관학 진흥책 숙종: 국자감에 서적포(출판사)를 두어 서적 간행을 활성화 예종: 7재(전문 강좌, 국자감에 설치), 양현고(장학 재단), 궁중에 청연각, 보문각 설치(궁중에 설치된 도서관 겸 학문 연구소) 인종: 경사 6학 정비, 유학 교육 강화 1. 5경, 3사, 제자백가에 모두 능통한 자는 3등급으로 나누어 등용=>원성왕 독서삼품과 설치(788)
11. 삼국시대의 불교에 대한 서술 중 옳지 않은 것은?
  • ① 신라는 삼국 중 불교수용이 가장 늦었고, 그 과정에서 전통사상과 마찰을 빚었다.
  • ② 삼국은 중앙집권체제의 확립과 지방세력의 통합을 힘쓰던 시기에 불교를 수용하였다.
  • ③ 신라불교는 왕실의 강력한 비호 아래 호국불교로 진흥하였다.
  • ④ 고구려는 ‘왕즉불(王卽佛)’ 사상을 수용하여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였다.

2023. 4. 29. 10:43삭제
신라 불교 수용 시기 법흥왕(527) 3. 신라불교: 왕권과 밀착되어 성행(국가 불교적 성격) 신라불교의 중심 교리 미륵불 신앙-진흥왕 때 조직화된 화랑 제도의 정신적 기반이 됨. 4. 신라 왕실은 왕이 곧 부처(왕즉불) 사상을 바탕으로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였다. -삼국 중 국가 발전이 가장 늦었던 신라는 불교 수용을 통하여 왕권 강화를 꾀하였는데, 법흥왕에서 진덕 여왕에 이르기까지에는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고 왕실을 석가모니 집안의 환생으로 여겨 왕즉불 사상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12. 아래의 조선사와 한국통사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조선사」 편찬자들은 조선의 역사를 정체성, 타율성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 ② 「한국통사」의 저자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혼’으로 파악하였다.
  • ③ 「조선사」 편찬의 목적은 식민통치를 효율적으로 실시하려는 것이었다.
  • ④ 「한국통사」의 저자는 조선사연구초도 집필하여 민족정기를 선양하였다.

2023. 4. 29. 10:54삭제
조선반도편찬위원회(조선사 편수회): 식민사관을 토대로 조선사 편찬 1.일제의 한국사 왜굑 정체성론 : 우리 민족의 역사는 오랫동안 정체되고 발전하지 못하였다는 주장 타율성론: 우리의 민족성은 분열성이 강하여 항상 내분하여 싸웠다는 주장 2. 박은식-혼 3. 한국사 왜곡에 앞장섬 4. 한국통사의 저자-박은식, 조선사연구초-신채호
13. 4⋅9 혁명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와 장기집권이 배경이 되었다.
  • ② 3ㆍ5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되었다.
  • ③ 대학교수단의 시국선언은 4월 19일 학생 시위를 촉발시켰다.
  • ④ 학생이 앞장서고 시민이 참여한 민주혁명이었다.

2023. 4. 29. 11:00삭제
3. 1960년 4.19 혁명의 전개 3.15 부정 선거 규탄 시위 ->김주열 학생의 시신 발견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 ->대학교수단의 시국 선언문 발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 발표 ->허정 과도 정부 수립
14. 조선 후기의 문학과 예술의 경향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추사체가 창안되어 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 ② 양반전, 허생전 등의 한글소설을 통해 양반사회를 비판⋅풍자하였다.
  • ③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유행하였다.
  • ④ 미술에 서양화의 기법이 반영되어 사물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2023. 4. 29. 11:13삭제
1. 김정희: 고금의 필법을 두루 연구하여 굳센 기운과 다양한 조형성을 가진 추사체 창안 2. 박지원: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의 한문 소설 저술 -양반 사회의 허구성 지적, 실용적 태도 강조 -현실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문체로 혁신할 것을 주장 3.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유행 4. 강세황: 서양화 기법을 반영하여 더욱 실감나게 표현
15.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의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 ② 통일은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한다.
  • ③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
  • ④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연방제 안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

ㅌㅌ2023. 4. 29. 11:19삭제
7.4 남북 공동 성명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 4.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연방제 안을 인정하고, 이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 김대중
16. 1942년 중국 화북지방에서 결성된 조선독립동맹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① 조선의용군을 거느리고 중공군과 연합하여 항일전쟁에 참가하였다.
  • ② 조국광복회를 결성하고 보천보전투를 수행하였다.
  • ③ 중국 국민당군과 합세하여 중국 각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 ④ 시베리아지방으로 이동하여 소련군과 합세하여 정탐활동을 전개하였다.

2023. 4. 29. 11:32삭제
조선독립동맹: 중국 화북지방에서 사회주의 계열이 결성(1942, 김두봉 주도) -조선의용군을 거느리고 중공군과 연합하여 항일전쟁에 참가 2. 조국광복회 결성(1936)->동북항일연군, 보천보 전투 지원 1937 3. 조선 의용대(1938) 4. 동북 항일 연군 교도여단(김일성 주도)
17. 다음 내용의 결과로 나타난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은?
  • ① 일본은 낭인과 군대를 앞세워 궁중을 침범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다.
  • ②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
  • ③ 김홍집 내각이 출범하여 ‘홍범 14조’를 발표하였다.
  • ④ 박영효는 반역음모가 발각되어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x2023. 4. 29. 13:36삭제
1. 1895년 8월에 일본 군대와 정치 낭인들을 동원하여 왕궁을 습격한 후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다. 2. 1896년 아관파천 3. 홍범 14조: 고종이 종묘에 나아가 홍범 14조를 발표하고 개혁의 추진을 서약하였다.(갑오개혁, 1894)
2023. 4. 29. 12:03삭제
1895년 시모노셰키 조약 (일본이 청으로부터 요동 반도 할양) ->삼국 간섭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일본에게 요동 반도 반환 요구) ->일본이 압력에 굴복 ->친러 내각 성립(일본의 영향력 약화) ->을미사변, 단발령(->을미의병)
18. 일제 시기의 경제정책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일제는 산미증산계획을 이루기 위해 지주제를 철폐하였다.
  • ② 일제는 1930년대 이후에 조선의 공업구조를 군수공업체제로 바꾸었다.
  • ③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많은 양의 토지가 총독부 소유지로 편입되었다.
  • ④ 일제는 1910년에 회사령을 공포하여 조선인의 회사 설립을 통제하였다.

2023. 4. 29. 14:03삭제
4. 회사령 공포 1910년 허가제를 골자로 함, 한국인의 회사 설립과 경영 통제->민족 자본의 성장 억제, 일본인이 한국 공업을 주도 3. 토지조사사업(1912~1918) 토지조사령(1912) 결과: 미신고 토지, 공공 기관에 속해 있던 토지, 마을이나 문중 소유의 토지와 산림, 초원, 황무지 등을 모두 조선 총독부가 소유->탈취한 토지를 동양 척식 주식 회사를 비롯한 일본인 토지 회사나 개인에게 헐값으로 불하 2. 1930년대 경제 공하의 타격 속에 일본 대기업의 경제 침략 강화->일제의 본격적인 대륙 침략으로 전기, 제철, 중화학 공장 등 군수 공업 시설을 다수 설치->우리나라를 일본의 병참 기지로 삼음 1. 산미증식계획(1920~1933) 일제의 정책: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하면서 수리 조합 사업, 토지 개량 사업 등의 비용을 농민에게 전가, 쌀 생간 강요->논농사 중심의 농업 구조로 바꿈 농민의 부담 가중: 소작료의 증가, 조합비, 비료대 등의 부담->농민 생활이 더욱 악화됨 결과: 일제의 강제 수탈량>증산량->식량 부족이 심화됨
19. 고려 후기의 신분 변동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무신집권기에 노비들의 신분해방운동이 일어났다.
  • ② 향리들은 음서를 통하여 활발하게 권문세족이 되어갔다.
  • ③ 신분이 미천한 환관 중에서도 권세가가 나타났다.
  • ④ 일반 농민이 군공을 세워 무반으로 출세하는 경우도 있었다.

2023. 4. 29. 14:30삭제
1. 무신집권기 최충헌 집권 이후 만적 등 천민들의 신분 해방 운동 발생 만적: 사람이면 누구나 공경대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신분 차별에 항거(*공경대부: 벼슬이 높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2. 고려 시대의 향리 -각 지방 호족들의 향리화 -지방의 실질적 지배층 -지방 행정의 실무 담당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 ->후기에는 신진 사대부 형성 원 간섭기 친원 세력 : 하층민 중 전공을 세우거나 몽고 귀족과의 혼인, 몽고어에 능숙하여 신분 상승하는 경우가 다수였음->권문세족으로 성장 3. 환관 중에서도 권세가가 나타남 4. 일반 농민이 군공을 세워 무반으로 출세하는 경우도 있었음
20. 일제하에 일어났던 농민⋅노동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1920년대 소작쟁의는 주로 소작인 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 ② 1920년대 노동운동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투쟁은 원산총파업이었다.
  • ③ 1920년대 농민운동으로 암태도 소작쟁의가 일어났다.
  • ④ 1920년대에 이르러 농민⋅노동자의 쟁의가 절정에 달하였다.

2023. 4. 29. 14:46삭제
1. 1920년대 전반기: 소작인 조합이 중심이 된 소작 쟁의 2. 1929년 원산총파업: 일제 강점기 가장 큰 규모의 노동 운동->노동자들이 조직적인 파업 투쟁 전개, 항일 투쟁 정신 고취 3. 1923년 암태도 소작쟁의 4. 1920년대 후반기와 비교하여 1930년대에 후반기에 소작권, 소작기 관계 쟁의의 비율이 급증하였음(소작권, 소작지 관계 쟁의의 비율이 1920년대 후반기에는 절반이 안 되었으나 1930년대 후반기에 80% 이상으로 급증) 노동쟁의의 건수와 참가 인원도 1920년대보다, 1930년대가 더 많음